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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1월 29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1년 만에 세계가 대혼돈에 빠져들었다. 지난해 관세전쟁에 이어, 올해 초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체포·압송, 그린란드 병합 시도까지 벌어지면서 세계질서가 1세기 전 제국주의 시대로 회귀하는 양상이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어, 트럼프가 서반구를 미국의 세력권으로 편입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면서 세계가 강대국들이 인접 지역에서 절대적 영 릴게임예시 향력을 행사하는 이른바 ‘세력권 질서’로 재편될 우려마저 나온다. 이는 아시아에선 중국의 대만 병합 시도를 부추길 수 있어 우리로서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박종희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는 지난해 마치 이런 현상을 예견이라도 한 듯 세력권 질서를 역사적으로 조망한 책 ‘힘과 규칙: 국제질서를 바라보는 두가지 관점’을 펴냈다. 지난달 29일 박 교수를 릴게임바다이야기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나 왜 세력권 질서가 위험한지 물었다.
박 교수는 2007년 미국 워싱턴대학교(세인트루이스)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시카고대학에서 정치학과 조교수로 근무했다. 2012년부터 서울대에서 국제정치경제와 사회과학 방법론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연구주제로는 국제무역, 경제안보, 베이지안 사회과학 방법론, 선거여론조사에 대한 메타 오션파라다이스릴게임 분석, 국제뉴스를 이용한 빅데이터 분석 등이 있다. 현재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장, 국가미래전략원 경제안보클러스터 연구책임자, 그리고 국제문제연구소 국제정치데이터센터장을 맡고 있다.
―‘힘과 규칙’이란 책을 지난해 내셨는데 특별한 계기나 동기는?
“책을 구상하게 된 시점은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2024년 초였다. 조 바다이야기릴게임2 바이든 대통령이 여론조사에서 줄곧 뒤지는 것을 보면서, 만약 이대로 선거결과가 나오면 국제질서에 큰 변화가 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2023년 발간된 트럼프 후보의 ‘프로젝트 2025’가 대대적인 정부정책 개조를 천명하면서 트럼프 1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변화가 올 것 같았다. 그 변화가 미국 국내적인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국제질서의 변화로 이어 바다신릴게임 질 것이 분명하다면, 그 변화의 방향이 무엇일지 고민해보고 미리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쓰게 되었다. 가장 걱정스러운 변화 방향을 ‘세력권 질서’(Sphere of Influence)로의 회귀로 보았는데, 그 걱정이 점점 현실이 되는 것 같아 매우 우려스럽다.”
―국제질서를 크게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세력권 질서’ 두 가지로 분류하는 이유와 근거는 무엇인가?
“흔히 두 질서가 대등하게 양립해 온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국제정치 역사에서 기본값은 힘이 지배하는 세력권 질서였다. 강대국이 자신의 힘이 투사되는 범위 안에서는 위계적 질서를 세우고, 밖으로는 배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자연 상태에 가깝다. 반면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18~19세기 유럽의 계몽주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20세기 미국이 주도해 만든 인위적이고 예외적인 계몽주의적 기획이다. 즉, 힘의 논리가 지배하던 야만의 시대를 뚫고 규칙을 세우려는 거대한 실험이 지난 70여년간 지속된 것이다. 그 규칙의 핵심은 어떻게 평화를 지킬 것인가다. 자유주의는 두 가지 해법을 제시했다. 개방(자유무역)과 집단안보다. 이것이 전후 자유주의 질서의 핵심 원칙이었다. 지금 우리는 그 실험이 위기를 맞고, 다시 거친 자연 상태인 세력권 질서로 돌아가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현재 국제정세를 큰 틀에서 진단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와 서반구 우선 전략은 과거 먼로 독트린을 현대적으로, 그리고 매우 공격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19세기 먼로 독트린이 서반구에 대한 유럽의 간섭을 배제하는 방어적 성격이었다면, 트럼프 2기 전략은 서반구 내에서는 과거 제국주의 방식의 확고한 패권을 행사하고, 그 바깥세상에 대해서는 철저히 거래적 관점을 취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는 미국이 더 이상 세계 경찰로서 공공재를 제공하지 않고, 서반구 밖에서는 ‘역외 균형자’(Offshore Balancer)로 남겠다는 뜻이다. 역외 균형자는 패권국이 무력으로 직접 개입하지 않고 바다 밖(offshore)에서 주요 지역의 세력균형을 관리하는 걸 말한다. 19세기 영국의 패권전략에서 기원한 것으로, 이를 현대 미국 외교전략으로 지속적으로 주장한 대표적인 논자가 바로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다. 중국·러시아 같은 강대국들이 자신의 앞마당(세력권)을 갖는 것을 무조건 막기보다, 그들이 미국에 경제적 이익을 지불하거나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지 않는다면 이를 용인할 수 있다는 ‘힘의 분할’을 시사한다. 즉, “서반구는 미국 마음대로 할 테니, 그 밖에서 세력권을 만들고 싶으면 미국의 허락을 받아라”라는 논리다.”
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1월 29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트럼프가 명시적으로 세력권 질서를 추구한다고 볼 수 있는가?
“그렇다. 최소한 그린란드에서 남미로 이어지는 서반구 라인에서는 명백하다. 트럼프가 그린란드 매입을 거론하거나 파나마 운하 통제권에 관심을 보인 것은 전형적인 상업적 제국주의’(Commercial Imperialism) 발상이다. 그의 머릿속에서 전 세계를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두는 것은 밑지는 장사다. 서반구는 전통적으로 복수의 경합하는 지역 패권이 등장하지 않은 유일한 대륙이다. 따라서 서반구는 확실한 미국 세력권으로 굳히고, 동아시아나 동유럽 등 나머지 지역은 미국 안보 자산을 거둬들이거나 축소하려 할 것이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세력권 화하고 싶다면 미국은 이를 도덕적 규범으로 막기보다 “얼마를 내놓을 것인가”라는 거래의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세력권 질서로 회귀 시 약소국의 주권 침해나 영토 병합이 빈번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세력권 질서의 본질이 바로 강대국 간의 담합에 있기 때문이다. 1944년 윈스턴 처칠(영국)과 이오시프 스탈린(소련)이 발칸반도를 종이 한장으로 나눠 먹은 ‘퍼센티지 협정’이나, 1905년 미국과 일본이 필리핀과 조선의 지배권을 서로 용인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대표적인 역사적 증거다. 세력권 질서가 위험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강대국의 힘이 계속 변한다는 점이다. 세력권은 고정적이지만 강대국의 몸집이 커지거나 작아지면 결국 몸에 맞지 않은 옷처럼, 옷을 찢어버리거나 남의 옷을 뺏으려는 상황이 필연코 벌어진다. 핵무기의 등장으로 강대국 간 전면전이 어려워지면서 결국 남는 선택지는 세력권 경계선에 있는 약소국들이 희생양이 된다는 것이다. 세력권 질서가 등장하면 약소국들은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둘째, 민족·종교·이념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강대국이 개입할 명분이 언제나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를 병합할 때 내세웠던 ‘박해받는 동포의 보호’ 논리를 들 수 있다. ‘실지 회복주의’(irredentism)라고 부르는데, 세력권 질서에서는 이처럼 자국민이나 같은 민족의 안전을 구실로 타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정당화되기 쉽다. 셋째, 가장 중요하지만 그동안 간과되어 온 점인데, 세력권 내 약소국 내부에서 혁명과 내전이 구조화된다는 사실이다. 세력권 질서는 필연적으로 강대국의 이익에 봉사하는 괴뢰 정부의 등장을 낳는다. 이는 반작용으로 외세를 꺾고 매판세력을 축출해 순수한 자주 국가를 세우려는 혁명적 민족주의나 반체제운동을 강력하게 자극한다. 내부 저항이 거세질수록 강대국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무력으로 개입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잔인한 학살이나 참혹한 대리전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1·2차 세계대전 직전의 질서도 세력권 질서였는데, 그것이 전쟁의 원인이었다고 보는가?
“맞다.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1차 대전의 원인을 유럽 열강들의 얽히고설킨 동맹과 비밀 외교, 즉 세력권 질서에서 찾았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집단안보를 제창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역시 2차 대전 중 처칠과 스탈린이 추구한 낡은 세력권 분할 방식에 끊임없이 저항하며 4강(미·영·소·중)이 협력하는 집단안보 질서를 꿈꿨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얄타회담 등을 통해 결국 강대국들이 다시 세력권을 나누는 현실과 타협하게 되었고, 루스벨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그 불완전한 봉합이 냉전이라는 긴장 상태로 이어졌다. 세력권을 확장하려는 강대국들의 욕망이 충돌할 때 세계대전이 발발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의 교훈이다.”
―아시아에서는 대만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다. 중국의 대만 병합 가능성과 우리의 대응은?
“미국의 의지가 핵심 변수이지만, 한국과 일본에는 연루의 위협과 방기의 위협이 동시에 존재한다. 가장 우려스러운 시나리오는 미국이 대만 방어를 한국과 일본에 ‘아웃소싱’하는 경우다. 미국이 거래적 관점에서 대만 문제에 소극적으로 나오고, 중국이 이를 기회로 삼아 무력 통일을 시도한다면,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고 해상 교통로에 생존을 의존하는 한국과 일본은 엄청난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다. 미국이 뒤로 물러선 상황에서 우리가 중국의 위협에 맞서 대만을 방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지만, 인도적 재앙을 방관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책임 전가 전략이 최악의 상황인 만큼 이에 대한 정교한 대비가 필요하다.”
―트럼프의 일방적인 국제규범 파괴로 국제질서가 혼돈에 빠졌다. 이런 일탈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라고 보는가?
“매우 위중한 상황이다. 국제질서 주도국의 힘은 군사력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정치 시스템에 대한 신뢰, 즉 대내적 정당성에서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가 사법부, 연방준비제도, 군과 정보기관의 중립성을 훼손한다면 미국 시스템 자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 결국 관건은 2026년 중간선거이며, 여기서 세 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해 볼 수 있다. 첫째, 가장 극단적인 경우로, 국내 테러 위협이나 반란법(Insurrection Act) 발동 등을 명분 삼아 중간선거 자체가 연기되거나 중단되는 상황이다. 만약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미국 민주주의는 앞으로 상당 기간 회복하기 어려운 암흑기에 접어들 것이다. 둘째, 선거가 정상적으로 치러지더라도 민주당이 상·하원 중 어느 한 곳도 탈환하지 못하는 경우다. 견제 장치가 사라진 권력의 폭주로 미국 민주주의의 침식은 가속화될 것이다. 셋째, 민주당이 하원이나 상원을 되찾아 최소한의 견제와 균형을 회복하는 경우다. 다행히 현재로써는 이 세 번째 시나리오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가장 높다고 본다. 미네소타 시민들이 보여준 놀라운 시민정신이 미국 유권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고 본다. 유권자의 견제 심리가 작동해 의회 권력이 분점 된다면, 그것이 무너진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미국 민주주의를 복원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1월 29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최근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미국의 위협에 대응해 중견국 연대를 제안해 주목을 끌었다. 미국 없는 자유주의 국제질서 수립이 가능할까?
“노력은 해야겠지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무정부 상태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규칙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고, 반드시 힘(질서 주도국)의 뒷받침 또는 힘에 의한 방해가 없는 상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19세기 영국 패권기처럼 미국이 소극적 방관만 한다면 모를까, 현재 미국은 자신을 배제한 새로운 질서 형성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의사결정 구조다. 이 기구에서 중대한 결정을 하려면 85%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미국은 약 16.5%의 투표권을 독점하고 있다. 즉, 나머지 모든 국가가 찬성해도 미국이 반대하면 어떤 안건도 통과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가진 ‘단독 거부권’이다. 반면, 세계 2위 경제 대국인 중국의 투표권은 약 6%에 불과하다. 중국이 경제 규모에 걸맞게 투표권을 늘리려 해도, 비토권을 쥔 미국이 자신들의 영향력 축소를 의미하는 개혁안에 동의해 줄 리 만무하다. 구조는 약간 다르지만, 세계무역기구(WTO)도 비슷한 상황이다. 결국 미국이 동의하지 않는 한, 새로운 질서의 수립도, 기존 질서의 개혁도 불가능한 구조다.”
―전환기의 국제질서하에서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지금은 자강과 유연성이 생존의 열쇠다. 지금의 국제 정세는 파도가 매우 높고 바람의 방향이 수시로 바뀌는 거친 바다와 같다. 이런 상황에서 배의 키를 급격하게 꺾으면 전복될 위험이 크다. 우리는 헌법 정신(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이라는 나침반을 놓지 않으면서도 파도를 타는 유연한 외교가 필요하다. 맹목적인 줄 서기보다는, 사안별로 국익을 극대화하고 가치 공유국들과 연대해 세력권 질서의 야만성을 최소화하는 전략적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논설위원 hyun21@hani.co.kr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1년 만에 세계가 대혼돈에 빠져들었다. 지난해 관세전쟁에 이어, 올해 초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체포·압송, 그린란드 병합 시도까지 벌어지면서 세계질서가 1세기 전 제국주의 시대로 회귀하는 양상이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어, 트럼프가 서반구를 미국의 세력권으로 편입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면서 세계가 강대국들이 인접 지역에서 절대적 영 릴게임예시 향력을 행사하는 이른바 ‘세력권 질서’로 재편될 우려마저 나온다. 이는 아시아에선 중국의 대만 병합 시도를 부추길 수 있어 우리로서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박종희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는 지난해 마치 이런 현상을 예견이라도 한 듯 세력권 질서를 역사적으로 조망한 책 ‘힘과 규칙: 국제질서를 바라보는 두가지 관점’을 펴냈다. 지난달 29일 박 교수를 릴게임바다이야기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나 왜 세력권 질서가 위험한지 물었다.
박 교수는 2007년 미국 워싱턴대학교(세인트루이스)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시카고대학에서 정치학과 조교수로 근무했다. 2012년부터 서울대에서 국제정치경제와 사회과학 방법론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연구주제로는 국제무역, 경제안보, 베이지안 사회과학 방법론, 선거여론조사에 대한 메타 오션파라다이스릴게임 분석, 국제뉴스를 이용한 빅데이터 분석 등이 있다. 현재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장, 국가미래전략원 경제안보클러스터 연구책임자, 그리고 국제문제연구소 국제정치데이터센터장을 맡고 있다.
―‘힘과 규칙’이란 책을 지난해 내셨는데 특별한 계기나 동기는?
“책을 구상하게 된 시점은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2024년 초였다. 조 바다이야기릴게임2 바이든 대통령이 여론조사에서 줄곧 뒤지는 것을 보면서, 만약 이대로 선거결과가 나오면 국제질서에 큰 변화가 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2023년 발간된 트럼프 후보의 ‘프로젝트 2025’가 대대적인 정부정책 개조를 천명하면서 트럼프 1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변화가 올 것 같았다. 그 변화가 미국 국내적인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국제질서의 변화로 이어 바다신릴게임 질 것이 분명하다면, 그 변화의 방향이 무엇일지 고민해보고 미리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쓰게 되었다. 가장 걱정스러운 변화 방향을 ‘세력권 질서’(Sphere of Influence)로의 회귀로 보았는데, 그 걱정이 점점 현실이 되는 것 같아 매우 우려스럽다.”
―국제질서를 크게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세력권 질서’ 두 가지로 분류하는 이유와 근거는 무엇인가?
“흔히 두 질서가 대등하게 양립해 온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국제정치 역사에서 기본값은 힘이 지배하는 세력권 질서였다. 강대국이 자신의 힘이 투사되는 범위 안에서는 위계적 질서를 세우고, 밖으로는 배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자연 상태에 가깝다. 반면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18~19세기 유럽의 계몽주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20세기 미국이 주도해 만든 인위적이고 예외적인 계몽주의적 기획이다. 즉, 힘의 논리가 지배하던 야만의 시대를 뚫고 규칙을 세우려는 거대한 실험이 지난 70여년간 지속된 것이다. 그 규칙의 핵심은 어떻게 평화를 지킬 것인가다. 자유주의는 두 가지 해법을 제시했다. 개방(자유무역)과 집단안보다. 이것이 전후 자유주의 질서의 핵심 원칙이었다. 지금 우리는 그 실험이 위기를 맞고, 다시 거친 자연 상태인 세력권 질서로 돌아가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현재 국제정세를 큰 틀에서 진단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와 서반구 우선 전략은 과거 먼로 독트린을 현대적으로, 그리고 매우 공격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19세기 먼로 독트린이 서반구에 대한 유럽의 간섭을 배제하는 방어적 성격이었다면, 트럼프 2기 전략은 서반구 내에서는 과거 제국주의 방식의 확고한 패권을 행사하고, 그 바깥세상에 대해서는 철저히 거래적 관점을 취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는 미국이 더 이상 세계 경찰로서 공공재를 제공하지 않고, 서반구 밖에서는 ‘역외 균형자’(Offshore Balancer)로 남겠다는 뜻이다. 역외 균형자는 패권국이 무력으로 직접 개입하지 않고 바다 밖(offshore)에서 주요 지역의 세력균형을 관리하는 걸 말한다. 19세기 영국의 패권전략에서 기원한 것으로, 이를 현대 미국 외교전략으로 지속적으로 주장한 대표적인 논자가 바로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다. 중국·러시아 같은 강대국들이 자신의 앞마당(세력권)을 갖는 것을 무조건 막기보다, 그들이 미국에 경제적 이익을 지불하거나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지 않는다면 이를 용인할 수 있다는 ‘힘의 분할’을 시사한다. 즉, “서반구는 미국 마음대로 할 테니, 그 밖에서 세력권을 만들고 싶으면 미국의 허락을 받아라”라는 논리다.”
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1월 29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트럼프가 명시적으로 세력권 질서를 추구한다고 볼 수 있는가?
“그렇다. 최소한 그린란드에서 남미로 이어지는 서반구 라인에서는 명백하다. 트럼프가 그린란드 매입을 거론하거나 파나마 운하 통제권에 관심을 보인 것은 전형적인 상업적 제국주의’(Commercial Imperialism) 발상이다. 그의 머릿속에서 전 세계를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두는 것은 밑지는 장사다. 서반구는 전통적으로 복수의 경합하는 지역 패권이 등장하지 않은 유일한 대륙이다. 따라서 서반구는 확실한 미국 세력권으로 굳히고, 동아시아나 동유럽 등 나머지 지역은 미국 안보 자산을 거둬들이거나 축소하려 할 것이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세력권 화하고 싶다면 미국은 이를 도덕적 규범으로 막기보다 “얼마를 내놓을 것인가”라는 거래의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세력권 질서로 회귀 시 약소국의 주권 침해나 영토 병합이 빈번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세력권 질서의 본질이 바로 강대국 간의 담합에 있기 때문이다. 1944년 윈스턴 처칠(영국)과 이오시프 스탈린(소련)이 발칸반도를 종이 한장으로 나눠 먹은 ‘퍼센티지 협정’이나, 1905년 미국과 일본이 필리핀과 조선의 지배권을 서로 용인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대표적인 역사적 증거다. 세력권 질서가 위험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강대국의 힘이 계속 변한다는 점이다. 세력권은 고정적이지만 강대국의 몸집이 커지거나 작아지면 결국 몸에 맞지 않은 옷처럼, 옷을 찢어버리거나 남의 옷을 뺏으려는 상황이 필연코 벌어진다. 핵무기의 등장으로 강대국 간 전면전이 어려워지면서 결국 남는 선택지는 세력권 경계선에 있는 약소국들이 희생양이 된다는 것이다. 세력권 질서가 등장하면 약소국들은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둘째, 민족·종교·이념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강대국이 개입할 명분이 언제나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를 병합할 때 내세웠던 ‘박해받는 동포의 보호’ 논리를 들 수 있다. ‘실지 회복주의’(irredentism)라고 부르는데, 세력권 질서에서는 이처럼 자국민이나 같은 민족의 안전을 구실로 타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정당화되기 쉽다. 셋째, 가장 중요하지만 그동안 간과되어 온 점인데, 세력권 내 약소국 내부에서 혁명과 내전이 구조화된다는 사실이다. 세력권 질서는 필연적으로 강대국의 이익에 봉사하는 괴뢰 정부의 등장을 낳는다. 이는 반작용으로 외세를 꺾고 매판세력을 축출해 순수한 자주 국가를 세우려는 혁명적 민족주의나 반체제운동을 강력하게 자극한다. 내부 저항이 거세질수록 강대국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무력으로 개입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잔인한 학살이나 참혹한 대리전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1·2차 세계대전 직전의 질서도 세력권 질서였는데, 그것이 전쟁의 원인이었다고 보는가?
“맞다.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1차 대전의 원인을 유럽 열강들의 얽히고설킨 동맹과 비밀 외교, 즉 세력권 질서에서 찾았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집단안보를 제창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역시 2차 대전 중 처칠과 스탈린이 추구한 낡은 세력권 분할 방식에 끊임없이 저항하며 4강(미·영·소·중)이 협력하는 집단안보 질서를 꿈꿨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얄타회담 등을 통해 결국 강대국들이 다시 세력권을 나누는 현실과 타협하게 되었고, 루스벨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그 불완전한 봉합이 냉전이라는 긴장 상태로 이어졌다. 세력권을 확장하려는 강대국들의 욕망이 충돌할 때 세계대전이 발발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의 교훈이다.”
―아시아에서는 대만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다. 중국의 대만 병합 가능성과 우리의 대응은?
“미국의 의지가 핵심 변수이지만, 한국과 일본에는 연루의 위협과 방기의 위협이 동시에 존재한다. 가장 우려스러운 시나리오는 미국이 대만 방어를 한국과 일본에 ‘아웃소싱’하는 경우다. 미국이 거래적 관점에서 대만 문제에 소극적으로 나오고, 중국이 이를 기회로 삼아 무력 통일을 시도한다면,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고 해상 교통로에 생존을 의존하는 한국과 일본은 엄청난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다. 미국이 뒤로 물러선 상황에서 우리가 중국의 위협에 맞서 대만을 방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지만, 인도적 재앙을 방관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책임 전가 전략이 최악의 상황인 만큼 이에 대한 정교한 대비가 필요하다.”
―트럼프의 일방적인 국제규범 파괴로 국제질서가 혼돈에 빠졌다. 이런 일탈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라고 보는가?
“매우 위중한 상황이다. 국제질서 주도국의 힘은 군사력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정치 시스템에 대한 신뢰, 즉 대내적 정당성에서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가 사법부, 연방준비제도, 군과 정보기관의 중립성을 훼손한다면 미국 시스템 자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 결국 관건은 2026년 중간선거이며, 여기서 세 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해 볼 수 있다. 첫째, 가장 극단적인 경우로, 국내 테러 위협이나 반란법(Insurrection Act) 발동 등을 명분 삼아 중간선거 자체가 연기되거나 중단되는 상황이다. 만약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미국 민주주의는 앞으로 상당 기간 회복하기 어려운 암흑기에 접어들 것이다. 둘째, 선거가 정상적으로 치러지더라도 민주당이 상·하원 중 어느 한 곳도 탈환하지 못하는 경우다. 견제 장치가 사라진 권력의 폭주로 미국 민주주의의 침식은 가속화될 것이다. 셋째, 민주당이 하원이나 상원을 되찾아 최소한의 견제와 균형을 회복하는 경우다. 다행히 현재로써는 이 세 번째 시나리오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가장 높다고 본다. 미네소타 시민들이 보여준 놀라운 시민정신이 미국 유권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고 본다. 유권자의 견제 심리가 작동해 의회 권력이 분점 된다면, 그것이 무너진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미국 민주주의를 복원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1월 29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최근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미국의 위협에 대응해 중견국 연대를 제안해 주목을 끌었다. 미국 없는 자유주의 국제질서 수립이 가능할까?
“노력은 해야겠지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무정부 상태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규칙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고, 반드시 힘(질서 주도국)의 뒷받침 또는 힘에 의한 방해가 없는 상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19세기 영국 패권기처럼 미국이 소극적 방관만 한다면 모를까, 현재 미국은 자신을 배제한 새로운 질서 형성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의사결정 구조다. 이 기구에서 중대한 결정을 하려면 85%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미국은 약 16.5%의 투표권을 독점하고 있다. 즉, 나머지 모든 국가가 찬성해도 미국이 반대하면 어떤 안건도 통과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가진 ‘단독 거부권’이다. 반면, 세계 2위 경제 대국인 중국의 투표권은 약 6%에 불과하다. 중국이 경제 규모에 걸맞게 투표권을 늘리려 해도, 비토권을 쥔 미국이 자신들의 영향력 축소를 의미하는 개혁안에 동의해 줄 리 만무하다. 구조는 약간 다르지만, 세계무역기구(WTO)도 비슷한 상황이다. 결국 미국이 동의하지 않는 한, 새로운 질서의 수립도, 기존 질서의 개혁도 불가능한 구조다.”
―전환기의 국제질서하에서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지금은 자강과 유연성이 생존의 열쇠다. 지금의 국제 정세는 파도가 매우 높고 바람의 방향이 수시로 바뀌는 거친 바다와 같다. 이런 상황에서 배의 키를 급격하게 꺾으면 전복될 위험이 크다. 우리는 헌법 정신(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이라는 나침반을 놓지 않으면서도 파도를 타는 유연한 외교가 필요하다. 맹목적인 줄 서기보다는, 사안별로 국익을 극대화하고 가치 공유국들과 연대해 세력권 질서의 야만성을 최소화하는 전략적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논설위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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