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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규 원장이 지난해 스리랑카 콜롬보 외곽의 한 고아원을 방문해 치과 진료를 하고, 선물을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박윤규 치과의원 제공
창원=박영수 기자
성취와 성공을 향한 욕망의 중력이 사회를 움직이는 시대다. 부동산과 주식으로 자산을 늘리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됐다. 이 같은 욕망은 때로 이웃 간 갈등과 국가 간 분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 중력을 거슬러 30년 가까이 가진 것을 내놓으며 살아온 사람이 있다. 오른 다리에 의족을 한 채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에서 ‘박윤규 치과의원’을 운영하며 이웃과 수감 바다이야기고래출현 자, 해외 오지 주민들을 돕고 있는 박윤규(61) 원장이다.
그를 인터뷰하기는 쉽지 않았다. “할 말이 없다”며 거절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어렵게 설득해 지난 2일 병원에서 만났다. ‘왜 그렇게 많은 봉사와 돈을 내놓느냐’는 질문에 그는 “베푸는 데 손해 볼 게 없고, 봉사할 대상과 기회를 얻은 것에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했다. 선뜻 납득 릴게임손오공 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그래서 진료가 끝난 원장실에 마주 앉아 그의 삶을 천천히 들어봤다.
◇1984년 7월의 전환점= 박 원장의 삶에서 스무 살에 겪은 기차 사고는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전환점이 됐다. 고향인 전북 남원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서울 용산철도고등학교 운전과에 진학했고, 졸업과 함께 1984년 1월 철도청에 입사했다. 안정 릴게임골드몽 적인 철도 공무원이자 기차 기관사의 길에 막 들어선 참이었다.
하지만 전도유망한 청년에게 불의의 사고는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 그해 7월 부기관사로 근무하던 중 기차 충돌 사고를 당했다. 깨어보니 오른쪽 다리 15㎝ 무릎 아래가 절단된 상태였다. 박 원장은 “그 정도 사고면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오리지널골드몽 석 달 열흘 만에 의족을 착용하고 복귀했지만 기관사가 되는 길은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었다. 대신 철도청 공무원들을 위한 연금 매장 관리 업무가 그에게 맡겨졌다. 평생 공무원 신분이 보장된 안정된 자리였다. 그는 그대로 철도청에 남아 일하며 왜 자신에게 이런 사고가 닥쳤는지 자책하며 살아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모바일릴게임 “이렇게는 살 수 없다”며 이듬해 사표를 내고 수학자가 되기 위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의 나이 스물하나였다. 장애를 얻었지만 그의 삶에는 공부라는 새로운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비록 이후 서울대에 진학해 이루려 했던 수학자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형님의 권유로 진로를 바꿔 1990년 원광대 치의예과에 입학했다. 이후 6년간의 교육과정을 거쳐 치과의사가 됐다. 그러곤 1996년 연고가 없는 마산에 치과의원을 개원해 30년째 같은 동네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다.
박윤규 원장이 직접 제작해 가져간 임시 진료 체어를 이용해 필리핀 팔라완의 한 시설에서 치과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박윤규 치과의원 제공
◇봉사하는 치과의사= 박 원장이 자신만을 위해 살았다면 평범한 치과의사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고 이후 ‘제2의 삶’을 살게 된 그는 치과를 개원한 이듬해부터 덤으로 얻은 인생을 세상에 돌려주기 위해 봉사를 시작했다. 첫 봉사는 지인의 소개로 교회에서 시작됐다. 오지 마을 봉사활동에 치과 의사가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따라나선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봉사는 그의 삶의 중심이 됐다. 그는 한 해 네 차례 국내 봉사와 한 차례 해외 봉사를 이어갔다.
활동을 계속하면서 치과 진료는 다른 진료 과목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결국 다른 의료진과 함께하기보다 직접 팀을 꾸려 활동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고, 1998년부터 치과 보급이 비교적 확산된 국내보다 동남아시아 등 해외 오지 마을을 중심으로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연간 4∼5차례 해외 의료봉사를 떠난다. 주민 진료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목요일 저녁 출발해 월요일 아침 돌아오는 일정이다. 한 번 가면 하루 200명 이상을 진료한다. 마산 병원에서 하루 평균 60명가량을 진료하는 것과 비교하면 4배에 이르는 강행군이다.
진료팀은 치위생사 등 의료진 6명과 자원봉사자 9명 등 15명 내외로 꾸린다. 항공료와 체재비, 숙박비, 환자들에게 나눠줄 선물까지 한 번의 해외 의료봉사에 약 3000만 원이 들어간다. 비용은 모두 박 원장이 부담하고 의료진에게는 별도의 수당도 지급한다. 전쟁 같은 진료 현장에서는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치료가 이어진다. 대기 환자가 워낙 많다 보니 팀원들도 쉴 틈이 없다. 박 원장은 “허리 펼 시간도 없지만, 내가 비용을 내니 당당하게 더 일하자고 말한다”고 웃었다.
해외 봉사를 위해 그는 전용 치과 장비 캐리어도 따로 제작했다. 장비를 운송하는 용도지만 위쪽에 의자 헤드를 꽂으면 현지에서 진료 의자로 변신한다. 국내 봉사활동도 이어지고 있다. 진료가 없는 주말을 이용해 경남 섬마을을 찾아 치과 진료를 하고 있다. 국가보훈부와 협조해 분기별 4명의 보훈가족과 월 2명의 다문화가족도 무료로 치료해 주고 있다.
◇쉴 틈 없는 기부= 박 원장은 몸으로 하는 봉사와 별도로 치과의사인지 기부자인지 구분이 어려울 만큼 기부를 이어오고 있다. 그는 2017년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 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해 4년 만에 약정액을 모두 납부했다. 2021년에는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의 1억 원 고액 후원자 모임인 ‘유니세프 아너스클럽’에 이름을 올렸고, 대한적십자사 고액기부자 모임인 ‘레드크로스 아너스클럽’ 가입도 준비 중이다.
지역사회를 향한 나눔도 꾸준하다. 창원삼성병원에는 연간 1000만 원씩 지금까지 4000만 원을 기부했고, 앞으로 6000만 원을 추가로 낼 예정이다. 창원교도소에서는 주치의로 활동하며 받은 수감자 치료비 1000만 원을 다시 교도소에 환원하고 있다. 국군 제39보병사단에는 매년 3000만 원가량의 위문금을 보내고 있고, 보훈부에도 연간 400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는 지난해 6월 박 원장에게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했다.
◇“주되 잊어라”= 박 원장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기관사의 길을 계속 갔다면 어쩌면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았을지도 모른다”며 “치과의사로 제2의 삶을 살게 되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는 봉사에 대한 생각도 남달랐다.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을 언급하며 “주되 주었다는 생각마저 잊으라는 뜻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주되 잊어라’는 박 원장의 카카오톡 프로필 글귀이기도 하다.
그는 이어 “봉사는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는 행위라기보다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데 감사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원장은 “사고 당시에는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는데 살아남았다”며 “그래서 이 삶은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봉사 활동을 언제까지 이어갈 것이냐는 질문에는 “대략 70세 정도까지 앞으로 10년 정도는 계속할 생각”이라며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진료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마지막 목표로 해외 어려운 지역에 학교를 지어 아이들을 진료해 주고 싶다는 꿈도 밝혔다.
박 원장은 봉사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들은 봉사를 하면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베풀어서 손해 볼 일은 절대 없습니다. 봉사를 받아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니까요.” 이어 그는 “아무리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어도 받아줄 사람이 없으면 도울 수 없다”며 “봉사할 기회를 얻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가진 것을 더 늘리려고 하면 계속 줄어들지만 마음을 열고 나누면 더 커집니다. 저는 그것이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수감자들도 그에겐 환자일 뿐… 매년 1만 ~ 2만병 얼음생수 기부도■ 창원교도소 전담 치과주치의 활동
박윤규 치과의원 원장의 사람에 대한 애정은 주치의로 활동하고 있는 창원교도소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마약과 폭력 등 다양한 죄명으로 복역 중인 수감자들도 박 원장에게는 한 명의 환자일 뿐이다. 그의 진료를 받은 수감자들이 “봉사활동에 함께 가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오는 일도 종종 있다.
박 원장의 배려는 한여름 수감자들에게 제공하는 얼음 생수에서 잘 나타난다. 그는 매년 여름 창원교도소 수감자들을 위해 1만∼2만 병의 얼음 생수를 기부한다. 이 얼음 생수는 7∼8월 무더운 점심시간에 제공된다. 선풍기 하나에 의지해 좁은 방에서 여름을 보내야 하는 수감자들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지내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 장면은 고(故) 신영복 선생의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나오는 한 구절과 닮았다. “여름 징역은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내는 겨울철 원시적 우정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좁은 방에서 여러 명이 함께 견뎌야 하는 여름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박 원장의 얼음 생수 한 병은, 수감자들을 죄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바라보는 마음에서 나온 배려다. “불쾌지수가 올라가면 서로 힘들잖아요. 얼음물 한 병이 분위기를 바꿀 수 있어요.” 박 원장은 멋쩍은 듯 미소를 지었다.
박 원장이 병원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창원교도소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4년 수감자들에게 무료 틀니를 해주면서부터다. 이후 틀니 봉사를 이어오다 2016년부터는 교도소 요청으로 전담 치과 주치의로 활동하고 있다. 주 2회 점심시간을 이용해 하루 16명의 환자를 진료한다.
박 원장은 가족 면회가 없는 무기수 등의 영치금도 한 해 1000만 원가량 별도로 지원하고 있다. 그는 “감옥이라는 곳도 하나의 사회여서 그 안에서 일을 못 하면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지 못하고 동료 수감자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한 달에 2만 원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면회 오는 사람이 없고 아파서 일도 못 해 돈이 없는 재소자들을 보면 마음이 쓰여 영치금을 넣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박영수 기자
창원=박영수 기자
성취와 성공을 향한 욕망의 중력이 사회를 움직이는 시대다. 부동산과 주식으로 자산을 늘리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됐다. 이 같은 욕망은 때로 이웃 간 갈등과 국가 간 분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 중력을 거슬러 30년 가까이 가진 것을 내놓으며 살아온 사람이 있다. 오른 다리에 의족을 한 채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에서 ‘박윤규 치과의원’을 운영하며 이웃과 수감 바다이야기고래출현 자, 해외 오지 주민들을 돕고 있는 박윤규(61) 원장이다.
그를 인터뷰하기는 쉽지 않았다. “할 말이 없다”며 거절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어렵게 설득해 지난 2일 병원에서 만났다. ‘왜 그렇게 많은 봉사와 돈을 내놓느냐’는 질문에 그는 “베푸는 데 손해 볼 게 없고, 봉사할 대상과 기회를 얻은 것에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했다. 선뜻 납득 릴게임손오공 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그래서 진료가 끝난 원장실에 마주 앉아 그의 삶을 천천히 들어봤다.
◇1984년 7월의 전환점= 박 원장의 삶에서 스무 살에 겪은 기차 사고는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전환점이 됐다. 고향인 전북 남원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서울 용산철도고등학교 운전과에 진학했고, 졸업과 함께 1984년 1월 철도청에 입사했다. 안정 릴게임골드몽 적인 철도 공무원이자 기차 기관사의 길에 막 들어선 참이었다.
하지만 전도유망한 청년에게 불의의 사고는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 그해 7월 부기관사로 근무하던 중 기차 충돌 사고를 당했다. 깨어보니 오른쪽 다리 15㎝ 무릎 아래가 절단된 상태였다. 박 원장은 “그 정도 사고면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오리지널골드몽 석 달 열흘 만에 의족을 착용하고 복귀했지만 기관사가 되는 길은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었다. 대신 철도청 공무원들을 위한 연금 매장 관리 업무가 그에게 맡겨졌다. 평생 공무원 신분이 보장된 안정된 자리였다. 그는 그대로 철도청에 남아 일하며 왜 자신에게 이런 사고가 닥쳤는지 자책하며 살아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모바일릴게임 “이렇게는 살 수 없다”며 이듬해 사표를 내고 수학자가 되기 위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의 나이 스물하나였다. 장애를 얻었지만 그의 삶에는 공부라는 새로운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비록 이후 서울대에 진학해 이루려 했던 수학자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형님의 권유로 진로를 바꿔 1990년 원광대 치의예과에 입학했다. 이후 6년간의 교육과정을 거쳐 치과의사가 됐다. 그러곤 1996년 연고가 없는 마산에 치과의원을 개원해 30년째 같은 동네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다.
박윤규 원장이 직접 제작해 가져간 임시 진료 체어를 이용해 필리핀 팔라완의 한 시설에서 치과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박윤규 치과의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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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을 계속하면서 치과 진료는 다른 진료 과목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결국 다른 의료진과 함께하기보다 직접 팀을 꾸려 활동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고, 1998년부터 치과 보급이 비교적 확산된 국내보다 동남아시아 등 해외 오지 마을을 중심으로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연간 4∼5차례 해외 의료봉사를 떠난다. 주민 진료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목요일 저녁 출발해 월요일 아침 돌아오는 일정이다. 한 번 가면 하루 200명 이상을 진료한다. 마산 병원에서 하루 평균 60명가량을 진료하는 것과 비교하면 4배에 이르는 강행군이다.
진료팀은 치위생사 등 의료진 6명과 자원봉사자 9명 등 15명 내외로 꾸린다. 항공료와 체재비, 숙박비, 환자들에게 나눠줄 선물까지 한 번의 해외 의료봉사에 약 3000만 원이 들어간다. 비용은 모두 박 원장이 부담하고 의료진에게는 별도의 수당도 지급한다. 전쟁 같은 진료 현장에서는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치료가 이어진다. 대기 환자가 워낙 많다 보니 팀원들도 쉴 틈이 없다. 박 원장은 “허리 펼 시간도 없지만, 내가 비용을 내니 당당하게 더 일하자고 말한다”고 웃었다.
해외 봉사를 위해 그는 전용 치과 장비 캐리어도 따로 제작했다. 장비를 운송하는 용도지만 위쪽에 의자 헤드를 꽂으면 현지에서 진료 의자로 변신한다. 국내 봉사활동도 이어지고 있다. 진료가 없는 주말을 이용해 경남 섬마을을 찾아 치과 진료를 하고 있다. 국가보훈부와 협조해 분기별 4명의 보훈가족과 월 2명의 다문화가족도 무료로 치료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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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어 “봉사는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는 행위라기보다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데 감사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원장은 “사고 당시에는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는데 살아남았다”며 “그래서 이 삶은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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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원장은 봉사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들은 봉사를 하면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베풀어서 손해 볼 일은 절대 없습니다. 봉사를 받아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니까요.” 이어 그는 “아무리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어도 받아줄 사람이 없으면 도울 수 없다”며 “봉사할 기회를 얻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가진 것을 더 늘리려고 하면 계속 줄어들지만 마음을 열고 나누면 더 커집니다. 저는 그것이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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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규 치과의원 원장의 사람에 대한 애정은 주치의로 활동하고 있는 창원교도소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마약과 폭력 등 다양한 죄명으로 복역 중인 수감자들도 박 원장에게는 한 명의 환자일 뿐이다. 그의 진료를 받은 수감자들이 “봉사활동에 함께 가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오는 일도 종종 있다.
박 원장의 배려는 한여름 수감자들에게 제공하는 얼음 생수에서 잘 나타난다. 그는 매년 여름 창원교도소 수감자들을 위해 1만∼2만 병의 얼음 생수를 기부한다. 이 얼음 생수는 7∼8월 무더운 점심시간에 제공된다. 선풍기 하나에 의지해 좁은 방에서 여름을 보내야 하는 수감자들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지내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 장면은 고(故) 신영복 선생의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나오는 한 구절과 닮았다. “여름 징역은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내는 겨울철 원시적 우정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좁은 방에서 여러 명이 함께 견뎌야 하는 여름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박 원장의 얼음 생수 한 병은, 수감자들을 죄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바라보는 마음에서 나온 배려다. “불쾌지수가 올라가면 서로 힘들잖아요. 얼음물 한 병이 분위기를 바꿀 수 있어요.” 박 원장은 멋쩍은 듯 미소를 지었다.
박 원장이 병원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창원교도소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4년 수감자들에게 무료 틀니를 해주면서부터다. 이후 틀니 봉사를 이어오다 2016년부터는 교도소 요청으로 전담 치과 주치의로 활동하고 있다. 주 2회 점심시간을 이용해 하루 16명의 환자를 진료한다.
박 원장은 가족 면회가 없는 무기수 등의 영치금도 한 해 1000만 원가량 별도로 지원하고 있다. 그는 “감옥이라는 곳도 하나의 사회여서 그 안에서 일을 못 하면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지 못하고 동료 수감자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한 달에 2만 원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면회 오는 사람이 없고 아파서 일도 못 해 돈이 없는 재소자들을 보면 마음이 쓰여 영치금을 넣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박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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