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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0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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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부산노동권익센터가 주최한 '2025 제3회 감정·비정규 노동자 수기 공모전' 수상작 중 하나로, 감정·비정규직 노동자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필자의 동의 하에 일부 편집-구성하였습니다. <기자말>
[부산노동권익센터]
▲ [꿈과 현실의 경계] 거울 속의 로망, 파티션 너머의 현실
릴게임추천
ⓒ 부산노동권익센터/AI 사용 제작
성인이 된 후 두 번의 사계절을 보내고 였던가? 몇 달 일하고 마는 아르바이트가 아닌 회사원이라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아침에 말끔한 옷을 입고 출근을 하여 , 저녁 퇴근길엔 내일 있을 회의 걱 릴게임손오공 정도 해보고, 출장이라는 것도 가보고 후엔 경력을 인정받아 직책을 가져도 보고... 그 나름 로망이라는 게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 회사들이 4년대졸, 초대졸을 지원 기준으로 하고 있어, 지원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직업에 귀천이 있던가? 내가 목표하는 안정적인 수입과 직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매일 업데이트되는 바다이야기꽁머니 부산의 구인글 중에도 어느 지역을 선택해도 계속 보이는 일자리들이 있었는데 높은 임금, 경력상관 x ,노력하는 만큼 벌 수 있단 광고의 보험사와 카드사 콜센터에서 올린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부산의 모 카드사 아웃바운드 고객센터에 지원을 하였다(아웃바운드란 고객에게 전화를 거는 일). 내가 지원한 OO카드가 아닌 다른 명칭의 업체로 가서 릴짱릴게임 면접을 봤는데 스스로 이해하길 그저 서울 본사가 있고 , 부산 지점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원청과 하청도급사의 차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교육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카드이용 고객에게 카드론이든 리볼빙이든 교체발급이든 상품을 소개하고 , 고객은 원하면 가입. 원치 않으면 거절하고 끝나는 전화 노동이었다.
바다이야기게임장 사람을 숫자로만 보는 구조가, 감정을 갉아 먹는다
하지만 실전은 180도 달랐다. 마치 '누가 남의 돈을 눈물도 안 흘려놓고! 욕도 안 듣고 벌려고했어?!'하고 호되게 매일 나를 두들겨 패는 것 같았다. '내가 고객에게 전화를 건다'는 말은 허울뿐. 실상은 기계가 고객에게 전화를 걸고, 상담사가 강제로 연결되는 구조였다. 그 구조 속에선, 기침이 멎지 않아도, 온 국민이 눈물로 보낸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 때도, 김연아 선수의 금메달 도전에 모두가 숨죽이던 그 순간에도 나는 '왜 지금 전화했냐'는 고객의 윽박을 받아내며 카드 상품을 가입시켜야만 했다.
어느 날은 군인카드 상담을 하다가, 대신 받은 고객의 어머니가 '왜 자꾸 전화 하냐! 다신 전화 하지 마라!'고 고함을 지르는데 그래도 '본인 계실 때 다시 연락드리겠다' 고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고? 수신거부는 본인이, 상품설명을 다 듣고, 단호하게 거절해야한 가능했으니까. 한 어머니가 '자녀가 사망했다' 울분을 토해내도, 본인이 아닌 타인이 거절하면 그 이름을 아웃바운드 리스트에서 뺄 수 없었다. 회사 관리자는 다음달에 전화할 데이터가 줄어드는 거니 '거짓말일 수 있다'면서 거부했다. 회사엔 고객도 그저 데이터이며 상담사도 그저 '다음달에도 써야 할 소모품'이었다.
욕 듣는 것도 월급에 포함인가요?
▲ [보이지 않는 흉기] 수화기 너머 쏟아지는 감정의 화살 고객의 욕설과 폭언이 날카로운 화살과 먹구름이 되어 상담사를 공격하는 모습을 시각화했습니다. 피할 곳 없이 온몸으로 '감정 쓰레기통'의 역할을 감내해야 하는 고통을 담았습니다.
ⓒ 부산노동권익센터/AI 사용 제작
2년쯤 후 "이젠 고객들이 원해서 전화할 때만 받는 인바운드를 해야지!"라며 옮긴 나의 두 번째 직장은 모 홈쇼핑 콜센터였다.
김치가 짜다, 고구마가 안 달다, 당장 수거하고, 당장 배송해라 등의 요구는 태반이고, 상품이 품절이라도 나면 지구 반대편까지 찾아가 그 상품을 당장 앞에 대령하라는 항의도 상담사 몫이이었다.언젠가 입점 업체가 인기 로봇 장난감을 누가봐도 실수라고 볼만한 금액으로 잘못 써놓았는데 취소를 하면서 대란이 일었다. 그 이해를 구하는 것도 상담사의 몫이었다. 물건 구매자의 권리를 내세우면서도 판매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 구매고객과 택배사, 판매자의 입장을 조율하는 건 오로지 상담사 밖에 없었다.
통화를 하다보면 종종 듣는 18번이 있다. '내가 지금 하는 욕은 상담사에게 하는 욕이 아녜요. 회사로 하는거지!.' 입술 끝까지 올라온다. 내뱉고 싶다. '아니 그 얘기조차 내가 지금 듣고 있지 않습니까. 제발 그만 멈춰주세요.'
회사 또한 상담사는 식구는커녕 동료도 아니었다. 퇴사를 원하면 신입상담사가 교육받는 기간 전까지 일을 시키고 신입상담사로 채우면 그만이고, 전화량이 많아지면 식사시간은 축소되고, 출근은 앞당겨 졌으며, 퇴근은 늦춰졌다. 관리자는 퇴근 1분 전까지 통화대기를 하라며 고함을 지르는데 근무시간 오버해서 콜을 받을 대기를 하고 있어야 덜 혼나는 상담사가 되었다.
와중에 회사는 종종 이벤트를 했었는데 전화량이 적은 날은 전화 많이 받는 순서로 당일 연차를 쓰게 해준다하여 동료 상담사들끼리 경쟁을 해야 했다. 혹은 같은 조를 짠 뒤 전화를 많이 받는 조에 인센티브를 준다고 해서, 우리의 임금은 더 빨리 전화를 끊고 더 많이 전화 받는 상담사들에게 집중되었다.
원청에서 지급하는 1인의 인건비 중 일부가 하청의 각종 프로모션에 사용되며, 이로 인해 상위 소수자가 혜택을 받는 식인 것은 카드사나 홈쇼핑 여느 하청업체 모두 마찬가지였다. 만약 나는 1등인데 내 조원이 꼴등이라 연차를 못쓰게 되었다면, 인센티브를 못 받았다면 나는 누구를 탓했을까? 다같이 받아야하는 임금을 경쟁시켜서 지급하는 회사를 탓 할 생각을 당시엔 못했다. 상담사 서로가 서로를 채찍질하는게 당연한 분위기였다. 당시는 권리를 찾으면 유난이 되는 분위기였다.
누군가 이건 불법이라고 근로기준법과 노동자의 권리를 알려주었다면 달라졌을 텐데... 그 시간이 너무 아깝고 노동조합을 몰랐던 게 너무나 후회된다. 결국은 결혼준비를 하면서 3년간 버텨내던 홈쇼핑 인바운드도 그만뒀다. 주말에 밥그릇도 사고, 상견례도 해야 하고 웨딩 촬영도 해야 했지만, 주말에 쉴 수 있는 인원은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축복받아야할 내 첫걸음에 다른 상담사들에게 눈총을 받을까 걱정돼서였다. 아기를 갖고 육아휴직으로 퇴사하는 게 목표라고 입에 달고 살았기에, 눈물이 핑 돌았다. 주말연휴 구분없이 교대근무하는 홈쇼핑은 출산휴가+육아휴직후 퇴사가 당시엔 당연한 수순이었다.
처음 만난 희망, 부산노동권익센터
▲ [숫자에 묶인 삶] 실적이라는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 거대한 손(구조적 압박)이 내려보낸 줄에 묶여, 자신의 의지가 아닌 '콜 수', '실적', '대기 시간' 등의 지표에 따라 기계처럼 움직여야 하는 상담사의 수동적인 현실을 묘사했습니다.
ⓒ 부산노동권익센터/AI 사용 제작
아웃바운드도 해보았고, 인바운드도 해보았다. 하지만 모두 지쳐 그만두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란 꽤나 힘들었다. '신혼부부'는 참 예쁘고 소중한 단어지만, 팍팍한 현실에선 살림을 익힐 새 없이 아르바이트라도하며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모순적이게도 이 팍팍한 시대자체가 계속 노동을 해야 하는 원동력이었다.
'이제 전화 받는 일은 다신 안 하리'라며 개인사업장으로 발길을 돌렸지만, 그곳에선 최저임금 미준수와 임금체불이 또 문제였다. 비용 걱정에 노무 상담을 받을 수도, 피해를 입은 게 맞는지 확신도 들지 않을 때 알게 된 곳이 부산노동권익센터다. 방문상담 때 아무것도 모르는 나의 여러 문의들에 친절하게 같이 확인해줘서, 혼자서도 용기 있게 사업주를 신고 하였고 사과와 밀린 임금을 받을 수 있었다(이 글을 빌려 부산노동권익센터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지금도 나는 상담사입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나는 지금도 상담사이다. 비록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이지만,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한 공공기관 고객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주 5일에 임금191만 원(2022년 지원당시 최저임금 191만4440원)은 다시 도전 해보기에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주 5일이라니! 임금은 딱 그 정도 업무 강도겠지 가늘고 길게 가자'하는 또! 스스로 순진한 생각을 가졌다).
개인고객과 사업장은 대부분 '첫 연결된 상담사가' 모든 절차를 진행한다. 정확하게, 빠르게, 공공성을 지키면서도 원청에서 하청도급사에 내리는 지침, 고객의 요구, 시스템 오류까지 감당해야 한다. 와중에 하청업체는 2년마다 하는 입찰에서 좋은 점수를 따기 위해 고객편의나 상담사 처우개선이 아닌 오롯이 원청 바라기가 되어 실적 올리기에만 급급하다.
내가 소속된 도급회사는 상담사에게 얘기한다. '콜수 올려라. 고객이 묻는 것만 말하고 빨리끊어라' , '고객이 원청 전화번호를 물어도 상담사가 우선해결해라', '고객이 원청을 연결 요청해도 바로 연결 하지마라. 원청 기준 몾맞추면 우리가 도급비를 100% 못 받는다' 등등. 이 기준들은 곧 상담사 실적으로도 직결되어 급여로 반영이 된다. 누구를 위한 공기관인가 의문이다.
여기서도 역시나 고객에게 상처받는 일은 일상이다. 월급에 고객이 언어폭력을 할 때마다 위로금이 책정 된다면 그나마 금융치료라는 걸로 나아질 텐데 아쉽다. 지금도 '제일 상처받은 일화가 뭡니까' 하면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일이 있다. 어느 날 한 고객이 연결되자마자 내이름을 묻더니, 이렇게 말했다. "상담사님, 저는 재수없는 놈입니다. 오늘 상담사님도 하루 종일 재수 없으십시오."
어떻게 상담을 마쳤을까? 차라리 육두문자를 내뱉었으면 욕설하지 말라고 경고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정말 언어폭력의 형태가 교묘하게 진화 됐다. 사람이 사람에게 저주를 퍼붓는 게 정상인가?
저주를 퍼붓는 고객, 이중적인 원청과 하청이 있어도 내가 아직 상담사로 일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고객에게 최선을 다해 상담을 하다보면 '친절해줘서 고맙다', '상담사님 덕분에 잘 알고 간다 행복하시라' 등의 고객이 있다. 그럴 때마다 눈물이 핑 돌정도로 마음가득 보람을 느낀다. 또 하나는 고객센터상담사 노동조합이 있단 사실이다.
노동조합을 모를 땐 관리자의 윽박이 당연했고, 고객에게 언어폭력을 당해도 쉴 수 없었으며, 원청과 도급업체의 횡포에 순응을 해야 했다면 지금은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뭉쳐서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 처우개선과 고용안전을 위해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과거 '굳세어라 금순아 같은 각오로 혼자 오롯이 버티어내다'였다면 지금은 '우리는 함께 싸울 수 있다. 내 옆엔 경쟁자가 아닌 동료다' 하는 믿음으로 일한다. 과거 개그 프로그램이나 영화에서 콜센터 상담사를 조롱하듯 희화화하던 시절들이 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상담사도 누군가의 가족입니다'라는 연결음처럼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고, 욕설 고객에게는 경고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고객들도 '수고하십니다'라는 첫 인사를 많이 해준다.
하지만 '나아졌다' 뿐, '좋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전히 감정을 갈아 넣으며 2년마다 업체가 바뀌는 고용불안에서 일하고 있다. 종종 감정이 바닥을 칠때 문득 내 가족이 떠오른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전부인데. 왜 이런 대우 받고 있지? 이 모습을 보면 내 가족이 얼마나 슬퍼할까." 그런 생각에 왈칵 눈물이 날 때도 있다. 하지만 내 가족이 슬퍼하지 않게 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내 감정은 오롯이 내 것이기에 누구도 해치지 못하게 강해지자는 다짐도 같이 하다 보면 또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이 글은 단지 내 이야기를 적는 것이 아니다. 오늘도 수많은 상담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목소리 하나로 감정노동을 감당하며 일하고 있다는 것을, 감정을 지우며 일하는 사람은 없으며, 우리도 감정이 있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세상에 말하고 싶어서 적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일터에 나간다.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의사와 벽돌공, 이주노동자와 내국인, 장애인과 비장애인 등 차별과 혐오를 없애고 노동가치를 존중하고 존중받는 사회를 꿈꾸면서 나는 오늘도 나아간다.
[부산노동권익센터]
▲ [꿈과 현실의 경계] 거울 속의 로망, 파티션 너머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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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노동권익센터/AI 사용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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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다수 회사들이 4년대졸, 초대졸을 지원 기준으로 하고 있어, 지원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직업에 귀천이 있던가? 내가 목표하는 안정적인 수입과 직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매일 업데이트되는 바다이야기꽁머니 부산의 구인글 중에도 어느 지역을 선택해도 계속 보이는 일자리들이 있었는데 높은 임금, 경력상관 x ,노력하는 만큼 벌 수 있단 광고의 보험사와 카드사 콜센터에서 올린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부산의 모 카드사 아웃바운드 고객센터에 지원을 하였다(아웃바운드란 고객에게 전화를 거는 일). 내가 지원한 OO카드가 아닌 다른 명칭의 업체로 가서 릴짱릴게임 면접을 봤는데 스스로 이해하길 그저 서울 본사가 있고 , 부산 지점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원청과 하청도급사의 차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교육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카드이용 고객에게 카드론이든 리볼빙이든 교체발급이든 상품을 소개하고 , 고객은 원하면 가입. 원치 않으면 거절하고 끝나는 전화 노동이었다.
바다이야기게임장 사람을 숫자로만 보는 구조가, 감정을 갉아 먹는다
하지만 실전은 180도 달랐다. 마치 '누가 남의 돈을 눈물도 안 흘려놓고! 욕도 안 듣고 벌려고했어?!'하고 호되게 매일 나를 두들겨 패는 것 같았다. '내가 고객에게 전화를 건다'는 말은 허울뿐. 실상은 기계가 고객에게 전화를 걸고, 상담사가 강제로 연결되는 구조였다. 그 구조 속에선, 기침이 멎지 않아도, 온 국민이 눈물로 보낸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 때도, 김연아 선수의 금메달 도전에 모두가 숨죽이던 그 순간에도 나는 '왜 지금 전화했냐'는 고객의 윽박을 받아내며 카드 상품을 가입시켜야만 했다.
어느 날은 군인카드 상담을 하다가, 대신 받은 고객의 어머니가 '왜 자꾸 전화 하냐! 다신 전화 하지 마라!'고 고함을 지르는데 그래도 '본인 계실 때 다시 연락드리겠다' 고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고? 수신거부는 본인이, 상품설명을 다 듣고, 단호하게 거절해야한 가능했으니까. 한 어머니가 '자녀가 사망했다' 울분을 토해내도, 본인이 아닌 타인이 거절하면 그 이름을 아웃바운드 리스트에서 뺄 수 없었다. 회사 관리자는 다음달에 전화할 데이터가 줄어드는 거니 '거짓말일 수 있다'면서 거부했다. 회사엔 고객도 그저 데이터이며 상담사도 그저 '다음달에도 써야 할 소모품'이었다.
욕 듣는 것도 월급에 포함인가요?
▲ [보이지 않는 흉기] 수화기 너머 쏟아지는 감정의 화살 고객의 욕설과 폭언이 날카로운 화살과 먹구름이 되어 상담사를 공격하는 모습을 시각화했습니다. 피할 곳 없이 온몸으로 '감정 쓰레기통'의 역할을 감내해야 하는 고통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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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쯤 후 "이젠 고객들이 원해서 전화할 때만 받는 인바운드를 해야지!"라며 옮긴 나의 두 번째 직장은 모 홈쇼핑 콜센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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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를 하다보면 종종 듣는 18번이 있다. '내가 지금 하는 욕은 상담사에게 하는 욕이 아녜요. 회사로 하는거지!.' 입술 끝까지 올라온다. 내뱉고 싶다. '아니 그 얘기조차 내가 지금 듣고 있지 않습니까. 제발 그만 멈춰주세요.'
회사 또한 상담사는 식구는커녕 동료도 아니었다. 퇴사를 원하면 신입상담사가 교육받는 기간 전까지 일을 시키고 신입상담사로 채우면 그만이고, 전화량이 많아지면 식사시간은 축소되고, 출근은 앞당겨 졌으며, 퇴근은 늦춰졌다. 관리자는 퇴근 1분 전까지 통화대기를 하라며 고함을 지르는데 근무시간 오버해서 콜을 받을 대기를 하고 있어야 덜 혼나는 상담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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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에서 지급하는 1인의 인건비 중 일부가 하청의 각종 프로모션에 사용되며, 이로 인해 상위 소수자가 혜택을 받는 식인 것은 카드사나 홈쇼핑 여느 하청업체 모두 마찬가지였다. 만약 나는 1등인데 내 조원이 꼴등이라 연차를 못쓰게 되었다면, 인센티브를 못 받았다면 나는 누구를 탓했을까? 다같이 받아야하는 임금을 경쟁시켜서 지급하는 회사를 탓 할 생각을 당시엔 못했다. 상담사 서로가 서로를 채찍질하는게 당연한 분위기였다. 당시는 권리를 찾으면 유난이 되는 분위기였다.
누군가 이건 불법이라고 근로기준법과 노동자의 권리를 알려주었다면 달라졌을 텐데... 그 시간이 너무 아깝고 노동조합을 몰랐던 게 너무나 후회된다. 결국은 결혼준비를 하면서 3년간 버텨내던 홈쇼핑 인바운드도 그만뒀다. 주말에 밥그릇도 사고, 상견례도 해야 하고 웨딩 촬영도 해야 했지만, 주말에 쉴 수 있는 인원은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축복받아야할 내 첫걸음에 다른 상담사들에게 눈총을 받을까 걱정돼서였다. 아기를 갖고 육아휴직으로 퇴사하는 게 목표라고 입에 달고 살았기에, 눈물이 핑 돌았다. 주말연휴 구분없이 교대근무하는 홈쇼핑은 출산휴가+육아휴직후 퇴사가 당시엔 당연한 수순이었다.
처음 만난 희망, 부산노동권익센터
▲ [숫자에 묶인 삶] 실적이라는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 거대한 손(구조적 압박)이 내려보낸 줄에 묶여, 자신의 의지가 아닌 '콜 수', '실적', '대기 시간' 등의 지표에 따라 기계처럼 움직여야 하는 상담사의 수동적인 현실을 묘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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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바운드도 해보았고, 인바운드도 해보았다. 하지만 모두 지쳐 그만두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란 꽤나 힘들었다. '신혼부부'는 참 예쁘고 소중한 단어지만, 팍팍한 현실에선 살림을 익힐 새 없이 아르바이트라도하며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모순적이게도 이 팍팍한 시대자체가 계속 노동을 해야 하는 원동력이었다.
'이제 전화 받는 일은 다신 안 하리'라며 개인사업장으로 발길을 돌렸지만, 그곳에선 최저임금 미준수와 임금체불이 또 문제였다. 비용 걱정에 노무 상담을 받을 수도, 피해를 입은 게 맞는지 확신도 들지 않을 때 알게 된 곳이 부산노동권익센터다. 방문상담 때 아무것도 모르는 나의 여러 문의들에 친절하게 같이 확인해줘서, 혼자서도 용기 있게 사업주를 신고 하였고 사과와 밀린 임금을 받을 수 있었다(이 글을 빌려 부산노동권익센터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지금도 나는 상담사입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나는 지금도 상담사이다. 비록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이지만,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한 공공기관 고객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주 5일에 임금191만 원(2022년 지원당시 최저임금 191만4440원)은 다시 도전 해보기에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주 5일이라니! 임금은 딱 그 정도 업무 강도겠지 가늘고 길게 가자'하는 또! 스스로 순진한 생각을 가졌다).
개인고객과 사업장은 대부분 '첫 연결된 상담사가' 모든 절차를 진행한다. 정확하게, 빠르게, 공공성을 지키면서도 원청에서 하청도급사에 내리는 지침, 고객의 요구, 시스템 오류까지 감당해야 한다. 와중에 하청업체는 2년마다 하는 입찰에서 좋은 점수를 따기 위해 고객편의나 상담사 처우개선이 아닌 오롯이 원청 바라기가 되어 실적 올리기에만 급급하다.
내가 소속된 도급회사는 상담사에게 얘기한다. '콜수 올려라. 고객이 묻는 것만 말하고 빨리끊어라' , '고객이 원청 전화번호를 물어도 상담사가 우선해결해라', '고객이 원청을 연결 요청해도 바로 연결 하지마라. 원청 기준 몾맞추면 우리가 도급비를 100% 못 받는다' 등등. 이 기준들은 곧 상담사 실적으로도 직결되어 급여로 반영이 된다. 누구를 위한 공기관인가 의문이다.
여기서도 역시나 고객에게 상처받는 일은 일상이다. 월급에 고객이 언어폭력을 할 때마다 위로금이 책정 된다면 그나마 금융치료라는 걸로 나아질 텐데 아쉽다. 지금도 '제일 상처받은 일화가 뭡니까' 하면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일이 있다. 어느 날 한 고객이 연결되자마자 내이름을 묻더니, 이렇게 말했다. "상담사님, 저는 재수없는 놈입니다. 오늘 상담사님도 하루 종일 재수 없으십시오."
어떻게 상담을 마쳤을까? 차라리 육두문자를 내뱉었으면 욕설하지 말라고 경고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정말 언어폭력의 형태가 교묘하게 진화 됐다. 사람이 사람에게 저주를 퍼붓는 게 정상인가?
저주를 퍼붓는 고객, 이중적인 원청과 하청이 있어도 내가 아직 상담사로 일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고객에게 최선을 다해 상담을 하다보면 '친절해줘서 고맙다', '상담사님 덕분에 잘 알고 간다 행복하시라' 등의 고객이 있다. 그럴 때마다 눈물이 핑 돌정도로 마음가득 보람을 느낀다. 또 하나는 고객센터상담사 노동조합이 있단 사실이다.
노동조합을 모를 땐 관리자의 윽박이 당연했고, 고객에게 언어폭력을 당해도 쉴 수 없었으며, 원청과 도급업체의 횡포에 순응을 해야 했다면 지금은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뭉쳐서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 처우개선과 고용안전을 위해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과거 '굳세어라 금순아 같은 각오로 혼자 오롯이 버티어내다'였다면 지금은 '우리는 함께 싸울 수 있다. 내 옆엔 경쟁자가 아닌 동료다' 하는 믿음으로 일한다. 과거 개그 프로그램이나 영화에서 콜센터 상담사를 조롱하듯 희화화하던 시절들이 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상담사도 누군가의 가족입니다'라는 연결음처럼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고, 욕설 고객에게는 경고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고객들도 '수고하십니다'라는 첫 인사를 많이 해준다.
하지만 '나아졌다' 뿐, '좋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전히 감정을 갈아 넣으며 2년마다 업체가 바뀌는 고용불안에서 일하고 있다. 종종 감정이 바닥을 칠때 문득 내 가족이 떠오른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전부인데. 왜 이런 대우 받고 있지? 이 모습을 보면 내 가족이 얼마나 슬퍼할까." 그런 생각에 왈칵 눈물이 날 때도 있다. 하지만 내 가족이 슬퍼하지 않게 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내 감정은 오롯이 내 것이기에 누구도 해치지 못하게 강해지자는 다짐도 같이 하다 보면 또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이 글은 단지 내 이야기를 적는 것이 아니다. 오늘도 수많은 상담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목소리 하나로 감정노동을 감당하며 일하고 있다는 것을, 감정을 지우며 일하는 사람은 없으며, 우리도 감정이 있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세상에 말하고 싶어서 적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일터에 나간다.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의사와 벽돌공, 이주노동자와 내국인, 장애인과 비장애인 등 차별과 혐오를 없애고 노동가치를 존중하고 존중받는 사회를 꿈꾸면서 나는 오늘도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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